전기차 스타트업 중에서도 단연 유망주로 인정받는 루시드 모터스의 첫 모델 에어 Lucid Air는 지난해 미국 <모터 트렌드>로부터 올해의 자동차 2022 Motor Trend Car of the Year로 선정되면서 성공적으로 시장에 데뷔했다. 하이테크, 럭셔리, 효율성이라는 조화를 완성한 루시드를 톺아보자.
진정한 력셔리 전기차 브랜드, Lucid Motors
지난해 12월 유튜브에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부터 엄청났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들 The World's Quickest Cars’이었다.
영상에 등장한 네 모델의 이름을 들으면 이 제목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수긍이 갈 정도였다. 일단 그 가운데 두 대는 가장 빠른 가속력을 가진 내연기관차인 부가티 시론 퓨어 스포츠와 가장 빠른 모터사이클인 두카티 파니갈레 V4 SP2였다. 다른 두 대의 경쟁자는 공통적으로 3모터 고성능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 S 플레이드와 루시드 에어 사파이어였다.
그리고 승자는 루시드였다.
먼저 자동차 3대로 치른 1/4마일(약 402m) 드래그 레이스에서 부가티 퓨어 스포츠와 테슬라 모델 S 플레이드를 제친 루시드 에어 사파이어는 두카티 파니갈레 V4 SP2와의 1:1 대결에서도 살짝 앞선 결과를 보여줬다. 물론 이런 간단한 경주 결과를 절대적인 성능으로 볼 수는 없다. 드라이버의 역량과 차량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루시드를 바라보는 시선에 이전보다 더 무게가 실리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가 독보적인 업적을 이루는 동안 루시드는 묵묵히 쫓아가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비록 비공식 경주이기는 하지만 위 동영상을 통해 이제 최소한 성능이라는 측면에서는 루시드가 테슬라를 따라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벌써 다가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발주자 루시드에게는 내심 뿌듯한 순간이었을 것이다(사실 이번 이벤트에 참전한 루시드 에어 사파이어는 양산 직전의 시제품이었다. 이전의 시합에서 테슬라 모델 S에게 루시드 에어 그랜드 투어링이 패배한 것을 설욕하기 위해 내보냈으리라).
루시드와 테슬라. 두 회사는 제품으로 라이벌이 되기 전부터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루시드 모터스의 CEO인 피터 롤린슨Peter Rawlinson이 테슬라에서 모델 S의 개발을 총 지휘한 수석 엔지니어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21년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루시드는 약 10년 전의 테슬라와 닮은 구석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독보적인 기술력으로부터 회사의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면에서 그렇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피터 롤린슨이 처음부터 루시드 모터스를 세운 것은 아니었다. 루시드 그룹의 전신으로 2007년 미국에서 설립된 아티바Atieva는 배터리와 전동 파워트레인을 공급하는 전기차 전문 부품사였다. 세 명의 공동 창업자는 모두 전기공학 또는 IT 엔지니어 출신으로, 그중 버나드 체Bernard Tse는 창업 초기의 테슬라에서 일하기도 했다. 아티바는 2013년 롤린슨을 최고 기술 책임자CTO로 영입하고, 2016년에는 전기 완성차 제작사로 새롭게 태어난다. 아티바에서 루시드로 이름을 바꾼 것도 2016년이다. 2019년에는 롤린슨이 CEO 자리도 맡게 된다.
비록 출발점과 앞선 기술력이라는 회사의 강점에서는 테슬라와 연관성을 갖고 있지만 루시드가 지향하는 바는 테슬라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테슬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파격적 기술 발전을 회사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기술 주도 회사Technology-driven Company’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루시드는, 롤린슨이 명확하게 밝힌 바에 따르면 독일 프리미엄 3사의 현재 위치를 미래에 차지하고자 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다. 우수한 기술력은 훌륭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루시드의 첫 모델인 에어Lucid Air는 테슬라의 모델 S와 ‘고성능 고급 전기 세단’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 이외의 면에서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모델 S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거대한 디스플레이로, 페이스리프트에서는 조종간처럼 윗부분이 없는 요크형 스티어링으로, 어찌 보면 파괴적 인테리어 디자인 변화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반면에 루시드 에어는 확연히 고급스럽고 안락한 공간 디자인으로 럭셔리 시장을 지향하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분된다.
2020년 최초로 공개된 루시드 에어는 매끈하고 세련된 외모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눈길을 끌었다. 매끈한 외모는 단순히 미적 감각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0.197에 불과한 루시드 에어의 공기저항 계수Cd는 양산 자동차 최저치다. 이것은 뛰어난 고속 정숙성, 높은 최고 속도 등 고성능 럭셔리 세단에 투영되는 기대 수준을 충족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실제로 루시드 에어는 최고 시속 200마일, 즉 320km/h를 능가하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하이퍼 세단이다.
낮은 공기저항 계수가 가져다주는 핵심적인 가치는 무엇보다 높은 에너지 효율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측정 결과 루시드 에어는 동급의 고성능 전기차 모델에 비해 우수한 에너지 효율을 보인다. 이것은 더 큰 배터리 팩을 탑재해 훨씬 무거운 루시드 에어의 중량을 감안할 때 놀라운 결과다. 그리고 대형 배터리 팩과 높은 에너지 효율의 시너지는 루시드 에어가 다른 어떤 동급 모델보다 항속거리가 훨씬 더 길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루시드 에어는 900V 기반의 전력 시스템을 사용하는 최초의 전기차 모델이다. 참고로 리막, 포르쉐, 현대차그룹이 자랑하는 고전압 시스템은 800V 기반이다. 400V 기반 시스템을 사용하는 테슬라에서도 슈퍼차징이 가능한 고성능 전력 시스템을 개발한 경험이 있었던 롤린슨 CEO 겸 CTO는 높은 성능과 효율, 안정성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고전압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제 막 대중화의 길로 접어든 800V보다 더 높은 900V 기반 시스템으로 한 발 앞서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결과 최대 300kW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초급속 충전이 가능해져 단 12분 충전으로 320km의 주행거리를 얻을 수 있게 됐다(해당 용량의 초급속 충전기로 충전하는 경우).
앞서 말했듯 럭셔리한 루시드 에어의 인테리어는 브랜드의 지향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완전히 유리로 만들어진 글래스 캐노피Glass Canopy는 절대적인 개방감을 제공한다. 실내등과 룸미러, 센서 모듈은 물론 운전에 필수적인 선바이저까지 유리창 안쪽 면에 부착시키는 혁신적인 구조를 실현해 탁 트인 시야와 동시에 기능성까지 만족시킨다. 이 차의 인테리어 디자인 언어를 요약하자면 ‘우아한 럭셔리’일 것이다. 가진 게 너무 많은 차인 만큼, 한마디를 더한다면 ‘편안함을 잊지 않은 미래적 인터페이스’ 정도를 부연할 수 있다. 계기반을 대체한 34″ 커브드 디스플레이Curved Display가 대표적 사례다.
루시드는 자체 개발 역량에 집중하고 외부 업체와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테슬라에 비해 상당히 유기적이고 협력적인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을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강력한 연산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센서를 사용해 고성능과 신뢰도를 모두 이룩한 루시드의 AI 주행 보조 장치 드림드라이브 프로DreamDrive Pro는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기반 시스템인 드라이브 하이페리온NVIDIA DRIVE Hyperion을 사용한다. 참고로 드림드라이브 프로는 14개의 카메라, 5개의 레이다, 12개의 초음파 센서, 그리고 1개의 라이다를 사용하여 정보의 신뢰도를 극한까지 밀어 올렸다.
루시드는 배터리 셀의 공급선 또한 다양화하고 있다. 2020년부터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에서 배터리 셀을 공급받아 왔는데 최근 파나소닉과도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셀을 외부에 의존하는 대신 루시드 자신은 배터리 팩의 제작에 집중한다. 용량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스케일러블Scalable 설계에 강점을 갖고 있으며 에너지 밀도 향상과 실내 공간 확보에도 능하다.
이렇듯 루시드는 플랫폼 등의 핵심 역량은 내재화하면서 외부 파트너들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인 기업이다. 따라서 경쟁이 심해지는 전기차 시장에서, 폐쇄적이고 독선적 경영 스타일에 사업 안정성에 불안감을 보이기도 하는 일부 경쟁 업체들에 비해 루시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선구적으로 이미 형성해놓은 럭셔리 시장을 겨냥한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부 전기차 브랜드에 비해 향후 발전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수월한 편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초기 투자 비용이 큰 사업에 도전한 스타트업 중에서 루시드 모터스는 재정적 안정성도 강점으로 꼽힌다. 강력한 투자자들이 지원하고 있어서다. 장기 투자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루시드의 지분 65%를 갖고 있는 최대 주주인 데다가 최근에는 지분을 더 늘렸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JP모건도 루시드 투자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루시드는 지난해 9월 30일 기준으로 현금 보유고가 38억6000만 달러(약 5조 원)라고 밝힌 바 있다. 대부분의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재정적 안정성에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루시드 에어 투어링.
굳이 루시드의 약점을 한 가지 찾아보자면, 라인업이다. 아직 연혁이 짧은 회사로서 실차 인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시장에 내놓은 모델은 에어Air 하나다. 에어 퓨어Pure, 에어 투어링Touring, 에어 그랜드 투어링Grand Touring, 에어 사파이어Sapphire까지 다양한 트림을 제공하면서 기본적으로 럭셔리 세단 세그먼트에서도 넓은 가격대로 시장 대응력을 개선하려고 했으나 최근 급격한 원가 상승으로 판매량 확대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물론 애초부터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겠으나, 루시드는 최근 크로스오버 SUV 그래비티Gravity의 정보를 공개했다. 에어 세단과 핵심 모듈을 공유하여 설계 · 제작하는 그래비티는 에어에 버금가는 고성능과 고효율, 그리고 루시드다운 럭셔리를 유지하면서도 크로스오버 SUV의 다재다능함을 추구할 예정이다. 이것은 마치 모델 S를 기반으로 모델 X를 추가한 테슬라를 본보기로 검증된 확장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정리해보자. 루시드 모터스는 앞선 기술을 갖고 있으나 이것을 휘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자동차 산업의 동료 기업들과 협력하며 함께 미래를 열고자 한다. 또한 고객에게도 새로운 기술, 새로운 도전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 대신 상류층 고객에게 미래의 럭셔리는 이럴 것이라는 나름의 스토리보드를 차분하게 제시한다. 루시드가 보유한 첨단 기술, 루시드 전기차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럭셔리와 고성능. 이러한 요소들은 각각 수단이며 결과물이고, 그들의 지향점은 결국 ‘미래’라고 절묘하게 조화시킨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유망주로 인정받는 동시에 첫 제품부터 확고한 영예를 얻은 루시드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의 동료들을 이끌며 자동차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회사다. 그래서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다.